여행 59

시간 집약적 LA 여행 4일차

투어 첫날. 새벽같이 일어나 체크아웃하면서 최소한의 물건을 제외한 짐을 호텔에 맡기고 투어 차량에 탑승했다. 과연 미국은 땅이 넓다. 관광지 한 곳 한 곳을 갈 때마다 차에서 몇 시간을 버텨야 한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기차에 실린 컨테이너,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물류 센터,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풍력 발전기가 보였다. 데저트 힐스 프리미엄 아웃렛에 들러 잠바와 옷을 샀다. 쇼핑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지만 막상 하면 나름 재밌고 시간도 잘 간다. 부족한 건 돈이지. 옛날 오로라 아웃렛에 들렀을 때 시향해 본 이후로 늘 가지고 싶었던 코치 EDP도 구입했다. 이 아울렛에서 유일하게 먹을 만할 건 파이브 가이즈라는 리뷰를 봐서 생각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몇 년 전 출장지에서 선배..

가다 2024.01.07

시간 집약적 LA 여행 3일차

아침부터 차를 몰고 애너하임의 디즈니랜드로 갔다. 어제 하루종일 시내운전만 하다 고속도로를 타니 마음이 좀 편했다. 출장이나 여행이 아니면 차를 몰 일이 없으니까 나는 만년 초보다. 디즈니랜드는 디즈니랜드 파크, 캘리포니아 어드벤처의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나와 동생은 마블 캐릭터 쪽이 더 친숙해 캘리포니아 어드벤처만 돌기로 했다. 들어가자마자 각자 마음에 드는 미키 마우스 머리띠를 하나씩 사 썼다. 아버지는 이런 걸 왜 쓰냐는 눈치였지만 나와 동생의 텐션에 얌전히 하나 고르셨다. 앞사람이 first visitor 뱃지를 받길래 우리도 달라고 해서 각자 옷에 달았다. 이곳에서 즐긴 것은 섹션을 나누어서 정리해 보기로 한다. 공원 내부 볼거리의 실시간 정보는 대부분 디즈니랜드 앱에 업데이트되어 편하게 찾..

가다 2023.12.12

시간 집약적 LA 여행 2일차

시차 때문인지 한국에서보다 이른 시간에 상쾌하게 일어났다. 미국 시간이 체질에 맞는 걸까? 아침으로 카페에 가서 미국식 브런치를 즐겼다. 미국에 출장 중일 때 카페에서 휴일 아점으로 베리와 꿀이 올라간 와플을 먹는 것이 그렇게 좋았는데. 이번에는 République Café란 곳을 찾아가 와플, 프렌치토스트, 샐러드, 오믈렛을 시켜 먹었고 역시 성공적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주위 LA 관광지로는 파머스 마켓과 더 그로브가 있었다. 파머스 마켓은 별 감흥이 없었고, 더 그로브 쪽이 길거리를 예쁘게 꾸며놓아 돌아다닐 맛이 났다. 애플 스토어의 거울로 된 천장이 인상적이었다. 베니스 비치 근처의 회사 오피스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 내부를 구경했다. 방문한 오피스는 시스템상으로 기록되어 도전과제 깨는 느낌도 ..

가다 2023.11.23

시간 집약적 LA 여행 1일차

자그마치 몇 달 전부터 계획했던 가족 LA 여행 출발일이다. 원래는 아버지 환갑 기념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무산된 바 있다. 휴가가 별로 없는 동생, 자영업자라 오래 쉬기 어려운 아버지의 의견을 수렴해 딱 1주일만 계획을 잡았다. 미국은 여행이 힘든 나라니 부모님이 더 나이 드시면 못 갈 것 같아 필수 코스는 잠시 들르기만이라도 해야겠는데, 미국 땅이 여간 넓은 게 아닌 데다 짧은 기간 때문에 동선을 짜기도 힘들었고 내가 짠 것치곤 무척 힘든 일정이 되었다. 반차를 쓰고 싸 둔 여행가방을 끌고 본가로 갔다. 사람이 네 명이라 와이파이 도시락을 오랜만에 빌려 봤는데, 며칠 전에 꾼 꿈대로 빌리는 걸 잊어버릴 뻔했다. 계획에는 잘 적어 놨는데 정작 살펴보지 않는 게 참 나답다. 공항 식당에서 주문한 ..

가다 2023.11.19

훌쩍 부산으로

2023. 8. 13. 14일에 휴가를 쓰면 15일 광복절까지 3일 쉴 수 있다. 3일 동안 가만히 있는 건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새벽에 충동적으로 부산 여행 계획을 잡았다. 숙소는 위치가 좋고 가장 싼 곳으로. 그 외 갈 곳으로는 눈여겨봤던 오마카세 집과 찜질방, 바닷가 한 곳, 연수가 추천해 준 암장 정도만 정해 놨다. 15일에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KTX는 거의 자리가 없어 겨우 점심에 출발하는 입석 하나를 잡았다. 한국에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니 뭐니 해도 원할 때 먼 지방까지 오가는 일은 쉽지 않은 듯하다. 기차 안에선 딱히 할 게 없었다. 죠죠 5부 애니메이션 마지막 화를 보고, 아이패드로 클라이밍 티셔츠 디자인 초안을 완성했고, 자판기에서 초코픽을 하나 사 와작와작 씹어먹었다...

가다 2023.08.26

여름 홋카이도 여행 3일차: 스스키노 나츠마츠리, 마지막 밤

2023. 8. 5. 삿포로로 돌아와 숙소에 짐을 풀고 Y가 찾은 STEAK&HAMBURG ひげ 본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나와 J는 와규 스테이크가, Y는 좀 싼 아메리칸 스테이크가 같이 나오는 메뉴를 골랐다. 햄버그의 육즙이 엄청났고 새콤한 나폴리탄이 느끼함에 약간의 변주를 줬다. 고기를 서로 나눠 먹어봤는데 와규는 정말 부드러웠고 Y의 것은 좀 많이 질겼다. 나츠마츠리 거리는 신주쿠의 거리만큼 붐비는 듯했다. 양쪽에 깔린 매대에서는 꼬치 등이 구워지고 있었고 플라스틱 테이블에선 연신 술잔이 부딪혔다. SNS에서 얼핏 본 대로 유흥업소에서도 많이 나왔는지 바니걸 차림의 여자들도 종종 보였고 업소 광고용 부채를 등에 꽂고 다니는 사람, 안주에 비해서 꽤 비싼 라인업의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일본의 ..

가다 2023.08.21

여름 홋카이도 여행 3일차: 비에이, 후라노

2023. 8. 5. J가 운무를 보여준다고 우리를 새벽에 깨운다 그리 호언장담을 했는데 결국 7시 넘어서 일어났다. 애초에 일찍 깨울 생각은 없었던 듯하다. 하늘이 매우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오늘 들를 곳이 대부분 시골길이라 널널해서 내가 운전을 맡았다. 여행지를 여기저기 찍어놓긴 했지만 코스를 정하지 않아 갈 곳은 그때그때 정했다. 혹여나 비가 내릴까 청의 호수부터 들렀다. 날이 흐리다 보니 물은 초록빛에 가까웠다. 흙탕물이 아니라는 데 감사해야 할까. 그럼에도 일정한 간격으로 꽂혀 있는 자작나무 줄기와 잔잔한 호수가 아름다웠다. 날씨가 맑을 때 한 번 더 오고 싶다. 가까운 곳에 흰수염폭포가 있어 가 봤다. 여기도 날씨가 좋으면 코발트 색 물빛이 예쁘다던데 이 때는 그냥 뿌연 녹색의 폭포가 ..

가다 2023.08.20

코로나 이후 첫 일본 여행: 스시오마카세

2023. 3. 21. 푹 자고 11시에 딱 맞춰 체크아웃했다. 피규어 박스를 백팩에 넣으니 간신히 들어가 다행히 쇼핑백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패딩은 어쩔 수 없이 입고 다녀야 했지만 대신 안에는 반팔만 입었다. 하루종일 더웠으므로 정말 적절한 판단이었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둔 다이칸야마의 스시 타케우치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생각지 못하게 하치코 동상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주위가 붐벼 기념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안 들었다. 흐렸지만 벚꽃이 어느 정도 피어 있어 예뻤다. 스시야는 한참 더 걸어 한산한 골목가에 있었다. 첫 메뉴가 나오자마자 술부터 주문했다. 메뉴는 따로 없고 종류와 원하는 느낌을 말하면 구비해 놓은 것 중 꺼내 주신다. 깔끔하고 드라이한 니혼슈 도쿠리로 시작했다가 주위 사람들이 ..

가다 2023.04.06

코로나 이후 첫 일본 여행: 시부야

2023. 3. 20. 시부야 역은 엄청났다. 그동안 가 본 일본의 대도시라 봐야 오사카나 삿포로 정도였는데 이곳은 정도가 달랐다. 일본 인구의 80% 정도가 여기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차로에 사람이 많다. 멋지고 특이한 패션을 한 사람도 많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한국 사람이 옷을 무난하게 잘 입긴 하지만 재미가 없다. 개인적으론 좀 더 다양성을 용인하는 분위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텔을 all day place라는 곳으로 잡았는데 체크인이 완전 셀프라 신선했다. 방은 캐리어 두 개와 침대 두 개를 빼면 발 디딜 공간이 없는 수준으로 정말 작았다. 특히 벽걸이 TV보다 얇아 보이는 냉장고가 인상 깊었다. 그래도 적당한 가격대에 적당한 위치가 여기밖에 없었고, 오다가다 본 1, ..

가다 2023.04.05

코로나 이후 첫 일본 여행: 쿠사츠

2023. 3. 20. 자기 전에 선언한 대로 동생이 아침 온천을 즐기고 돌아와 깨우기 전까지 잤다. 일어나자마자 식당으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오카유/밥 중에 뭘 먹을 것인지 고르라길래 동생은 밥, 나는 오카유가 뭔지 몰라 선택해 봤는데 죽이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소화도 잘 안 되므로 죽도 나쁘지 않다. 일본식 한 상차림이 나왔고 모든 반찬을 조금씩만 먹었다. 일본식 반찬은 의외로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한국에 들어오는 것은 한국인 입맛에 맞는 것만 들어오는 것일 테지. 낫토에 동봉된 간장이 맛있었던 게 기억난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공용 욕탕으로 갔다. 하루가 지나면 남녀 탕이 바뀐다. 내부가 좀 다를까 기대했지만 거의 비슷했다. 그래도 사람 없이 아침의 온천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다. ..

가다 2023.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