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스즈메의 문단속 감상

juo 2023. 3. 25. 20:37

주의: 스즈메의 문단속을 포함한 신카이 마코토의 몇몇 애니메이션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음

2023.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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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생신 기념으로 저녁에 내가 소고기를 사기로 했다. 본가에서 점심을 먹고 시간이 비길래 마침 보고 싶었던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을 바로 예매해 영화관으로 출발했다. 떠올려보면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별의 목소리』부터 이 감독의 작품을 꾸준히 감상해온 편이었다.

처음엔 옆에서 커플이 소근거리는 소리, 오른쪽 뒤에서 과자를 으적으적 씹는 소리가 거슬렸지만 이내 몰입할 수 있었다. 규슈에서 도쿄까지 여행하는 로드무비같은 짜임새가 경쾌했고, 중간에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상냥해 비현실적이지만 즐거웠다. 타인을 믿기 힘든 위험투성이의 사회라서 그런지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거나 주는 이야기는 늘 매력적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날씨의 아이』보단 알아듣기 쉬웠지만 여전히 불친절한 면이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보는 일본의 민간 신앙들. 우리도 이런 전통 문화를 발굴해 한국식 어반 판타지로 잘 써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웹툰 『신과 함께』가 그런 면에서 좋았지만 영화는 망해서 아쉽다.

영상미는 신카이 마코토 작품답게 아름답다.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은 실사로 표현하기 어렵다. 작중 등장하는 모든 곳의 풍경이 아름다웠으며, 미미즈가 물로 변해 흩어질 때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빗줄기가 눈에 띄었다. 미미즈가 도쿄 상공을 덮는 장면은 3D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지만 압도적인 재앙의 느낌을 잘 표현했다. 문 너머 드넓은 초원과 하늘 위로 알록달록한 별들이 보이는 장소도 환상적이었다. 『리디 & 수르의 아틀리에』의 성채 평원이라는 장소와 비슷하게 예뻤다.

음악 면에선 『너의 이름은.』보다 좋았다. 여기선 보컬곡이 뜬금없이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되며 흐름을 끊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번 작의 모든 곡들은 작중 분위기에 잘 맞았으며 東京上空나 すずめ같이 기억에 남는 곡도 있다.

『너의 이름은.』 엔딩에서는 주인공들이 작중의 사건을 어렸을 때 꾼 꿈 정도로 생각하며 점차 기억이 흐려진다는 묘사가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긴 했지만 그토록 인상적인 체험도 점점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이 씁쓸하고 여운이 남았다. 하지만 이번 작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니만큼 깔끔한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여행한 곳을 이모와 거꾸로 돌아오며 신세진 사람들을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좋았다.

재미있는 작품을 가능하면 계속 보고 싶기 때문에 최대한 오래 살고 싶다. 나도 언젠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