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시간 집약적 LA 여행 5일차

juo 2024. 1. 10. 23:01

눈을 감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분명 어제는 1시 45분 출발이라 했는데 일어나니 30분 호텔 도착 예정이라고 공지 카톡이 와 있었다. 부랴부랴 준비해 나갔다. 다른 분도 갑자기 당겨진 픽업 시간 때문인지 아직 준비를 못한 것 같았고, 여행사 측 사람은 카톡방에서 그분을 계속 몰아붙이고 있었다.

25분쯤 체크아웃하고 나와서 기다렸는데 차가 도착한 시간은 결국 45분이었다. 아버지가 "이럴 거면 말을 말지, 화장실도 못 갔는데."라고 한 마디 하셨는데, 여행사 측 사람이 "그럼 가세요."라고 하면서 언성이 약간 높아지는 걸 보고 미친 사람인가 싶었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짜증까지 났지만, 괜히 가이드 긁었다 여행 분위기 망치기 싫어서 참았다. 정작 가이드는 다른 분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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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어제 아버지가 차에 놓고 내린 핸드폰을 여행사에서 아침에 전달해준다 했는데 그것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한다. 어떻게 일을 이렇게 하지? "그러면 사무실 들렀다 가요?"라 묻는데, 당연히 들렀다 가야 할 걸 괜히 되물으니 더 어이가 털렸다. 나도 이런데 아버지 성격상 진작 말싸움이 벌어지고도 남았을 상황이었지만, 옆에 모르는 사람도 많고 해서 폐가 될까 봐 많이 참으신 듯하다. 결국 사무실에 들러 핸드폰을 전달받아 출발했고, 물론 이후 일정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버스로 갈아탔는데, 먼저 차에 오른 분들이 제멋대로 앉다 보니 자리가 나눠져 나와 어머니가 같이 앉고 아버지와 주희는 저 멀리 각각 따로 앉게 되었다. 잠깐 이동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야 하는데, 일행은 가까이라도 앉을 수 있게 어레인지를 했으면 좀 좋지 않았을까? 피곤하기도 했고 자리를 조정하려면 너무 많은 이동이 필요해 그냥 끝까지 이러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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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으론 맥모닝을 먹었다. 한국에서도 거의 먹지 않는데, 의외로 아침으로 먹으니 맛이 괜찮았다. 야채가 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해가 뜨고 지평선 위로 몰려오는 구름이 예뻤다. 이 미국 특유의 기후가 그리웠다.

파웰 호수와 댐은 창 밖으로 슥 보고 지나갔고, 홀스 슈밴드에서 자작 추락주의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 난간도 없어서 까딱 잘못하면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한국의 한반도 지형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앤탤롭 캐년은 내부로 들어가 침식으로 만들어진 줄무늬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원주민 가이드가 함께 다니며 풍화와 침식 과정, 역사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는데, 전문 용어로 들어가면 급격히 영어가 짧아진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바위의 곡선이 아름다워 어디를 찍어도 예술 사진 같았다. 무슨 이유인지 카메라는 못 들고 가게 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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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대망의 그랜드 캐년이다. 엄청 크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너무 멀어서 마치 사진을 보는 것 같아 딱히 감흥이 안 느껴지는 그런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얼핏 보면 그냥 언덕이지만 좌우를 돌아보면 최고점의 높이가 일정해 이 거대한 지형이 침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쉬웠던 점은, 헬기 투어를 할 생각이었는데 사실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말했어야 한단다. 그런 안내는 사전에 전혀 전달받지 못했고.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꽤 기대하고 있었는데 많이 실망했다. 여행사가 어째 일을 이렇게 하지? 미국은 평생 부모님과 다시 못 올 것 같으니 언젠가 다른 곳에서 비슷한 액티비티를 준비해 드려야겠다.

관람이 끝나고 집합 시간이 되어 같은 투어의 일행과 돌아가는 길에 모였다. 그런데 주차장도 넓다 보니 버스가 있는 곳이 어느 주차장인지 아무도 몰라 단체로 버스를 못 찾고 길을 잃었던 게 재미있었다. 가이드 분은 제시간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당황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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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걸려 다시 라스 베가스에 도착했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자는 일정인 것 같고 우리는 내일이 출국이라 로스 앤젤레스까지 돌아가야 한다. 연속으로 8시간쯤 차를 타는 일정이라 정말 힘들었다. 가이드 분은 친절하게 설명을 잘해 주셨고 겉핥기로나마 많은 코스를 볼 수 있어 나쁘지 않았지만, 피로에 여행사 일 처리가 별로인 것까지 겹쳐 여행 일정을 잘 짠 게 맞나 회의감이 들었다.

동생 휴가 일정을 고려하면서 봐야 할 것도 다 보려면 이것 말곤 방법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그냥 아쉬웠다. 우리 가족이 여행 계획을 짠 사람을 나무라는 법은 절대 없지만 괜히 기분이 좀 그랬다.

중간에 주유소에서 컵라면과 생수 등을 샀다. 한인타운 숙소에 도착하니 아늑하고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새벽 1시 반이었다. 야식으로 맥주랑 컵라면을 끓여 먹고 누웠다.

다음날은 귀국이므로 여행기는 여기까지만 올린다. 미국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가 너무 길어서 이렇게 며칠 잡고 여행을 가는 것보다 출장 중에 하루이틀씩 떠나는 것이 훨씬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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