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즐거운 청소

juo 2024. 2. 23. 22:54

2024. 1. 28.

어제저녁부터 시작한 신년회 겸 집들이가 끝났다. 밥 먹고 술 마시고 각종 보드게임을 한 후 유튜브를 보면서 기절했다. 9시에 일어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길래 나도 시간 맞춰 일어나 모두를 깨웠다. 내가 집주인만 아니었으면 언제나처럼 제일 늦게 일어났을 거다.

J는 출근을 해야 해서 먼저 나갔다. J의 생활을 통해 본 L사는 정말 블랙기업 그 자체다. 싱글일 때도 퇴사를 못 했는데 이젠 유부남인 데다 맞벌이도 아니니 평생 저기서 썩을 운명 같다.

일요일 이른 시간이라 배달 가능한 곳은 없었고, 집에 있던 식빵과 카이막, 꿀을 내 왔다. 터키산 카이막이라 그런지 한국산보다 좀 더 쫀쫀하고 우유 향이 많이 나 좋았다. S는 한국인이라 아침부터 빵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소시지 케첩볶음을 해 줬다. 밥은 없지만. 이번엔 좀 굵은 비엔나를 샀는데 그냥 먹기엔 좋지만 소야에는 얇은 게 더 맞는 듯하다. 전에 산 뽀로로 비엔나가 의외로 괜찮았었는데.

분리수거라도 도와줄까 하는 손님들을 쫓아내고 청소를 시작했다. 잠을 얼마 안 자서 한숨 자고 시작할 생각도 했는데 의외로 정신이 멀쩡했다.

거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 이불 빨래, 바닥 청소, 마지막으로 화장실 청소까지 모두 끝냈다. 시간상 청소를 엄청 자주 하진 않지만 할 때마다 좋다. 회사일은 열심히 해도 성과가 안 나올 때가 있고, 끝나도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가 하면 한참 후에 관련된 이슈가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집안일은 깔끔하게 끝난다.

생각해보면 옛날부터 청소하는 것을 싫어하진 않았다. 초등학생 시절 교실 청소를 할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친구들 중 반수는 그저 청소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놀곤 했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먼지가 뻔히 바닥에 보이고 깨끗이 치우면 기분이 좋은데 말이다. 게다가 청소가 제대로 안 되면 혼만 날 텐데.

중학교에서는 교직원 화장실 청소 담당을 한 적이 있었고 꽤 좋아했다. 학생 화장실에 비해 깨끗한 편이고 면적이 작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 혼자 하는 건 아니라 세워라내워라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원색의 플라스틱 빗자루를 세로로 세워서 바닥 타일을 문지르면 눈에 띄게 깨끗해지는 게 보여 만족감이 느껴졌다.

지금도 친구들이 더럽혀 놓은 화장실 바닥과 변기, 욕조를 새로 산 솔로 열심히 문지르며 생각한다. 난 지금처럼 머리 쓰는 일을 하기보단 역시 이런 단순 노동이 적성에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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