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71

여름 홋카이도 여행 3일차: 스스키노 나츠마츠리, 마지막 밤

2023. 8. 5. 삿포로로 돌아와 숙소에 짐을 풀고 Y가 찾은 STEAK&HAMBURG ひげ 본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나와 J는 와규 스테이크가, Y는 좀 싼 아메리칸 스테이크가 같이 나오는 메뉴를 골랐다. 햄버그의 육즙이 엄청났고 새콤한 나폴리탄이 느끼함에 약간의 변주를 줬다. 고기를 서로 나눠 먹어봤는데 와규는 정말 부드러웠고 Y의 것은 좀 많이 질겼다. 나츠마츠리 거리는 신주쿠의 거리만큼 붐비는 듯했다. 양쪽에 깔린 매대에서는 꼬치 등이 구워지고 있었고 플라스틱 테이블에선 연신 술잔이 부딪혔다. SNS에서 얼핏 본 대로 유흥업소에서도 많이 나왔는지 바니걸 차림의 여자들도 종종 보였고 업소 광고용 부채를 등에 꽂고 다니는 사람, 안주에 비해서 꽤 비싼 라인업의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일본의 ..

가다 2023.08.21

여름 홋카이도 여행 3일차: 비에이, 후라노

2023. 8. 5. J가 운무를 보여준다고 우리를 새벽에 깨운다 그리 호언장담을 했는데 결국 7시 넘어서 일어났다. 애초에 일찍 깨울 생각은 없었던 듯하다. 하늘이 매우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오늘 들를 곳이 대부분 시골길이라 널널해서 내가 운전을 맡았다. 여행지를 여기저기 찍어놓긴 했지만 코스를 정하지 않아 갈 곳은 그때그때 정했다. 혹여나 비가 내릴까 청의 호수부터 들렀다. 날이 흐리다 보니 물은 초록빛에 가까웠다. 흙탕물이 아니라는 데 감사해야 할까. 그럼에도 일정한 간격으로 꽂혀 있는 자작나무 줄기와 잔잔한 호수가 아름다웠다. 날씨가 맑을 때 한 번 더 오고 싶다. 가까운 곳에 흰수염폭포가 있어 가 봤다. 여기도 날씨가 좋으면 코발트 색 물빛이 예쁘다던데 이 때는 그냥 뿌연 녹색의 폭포가 ..

가다 2023.08.20

여름 홋카이도 여행 2일차

2023. 8. 4. 편의점 음식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편의점 메뉴 퀄리티는 이제 한국이 나은 것 같지만 일본에서만 먹을 수 있는 연어알이나 가쓰오부시, 그라탱 등의 메뉴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체크아웃 후 캐리어를 질질 끌고 오도리 공원을 지나 맥주 박물관까지 걸어갔다. 택시를 탔으면 했지만 Y는 역시 택시비에 몇 만원이나 쓰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가족들과 여행할 때와는 확실히 스타일이 다르다. 옛날에 삿포로에 가족들과 왔을 때는 연말이라 박물관이 닫아 관람은 하지 못했고, 징기스칸과 추첨으로 탄 사이드 메뉴를 잔뜩 먹은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무료 관람으로 삿포로 맥주의 역사를 한국어 자료로 볼 수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맥주 3종과 치즈 한 조각을 주문해 먹었다. 오전부터 술을 마시자니 ..

가다 2023.08.16

여름 홋카이도 여행 1일차

2023. 8. 3. 와이프와 먼저 일본 여행을 간 J가 보내온 사진은 날씨가 매우 좋았다. 파란 하늘에 몽실몽실한 구름들, 선명한 색채. 반면 나와 Y가 일본에 있을 때의 예보는 비 소식밖에 없었다. 이 여행 날짜 선정은 100% J에게 맞춘 건데, 배가 아팠다.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된 동생, 동생 남자친구와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가 점심을 사 줬다. 택시비는 아버지가 내 줄 터다, 아마도. 원래는 Y와 공항에서 점심을 먹을까 했는데, Y는 가격이 비싸다고 집에서 따로 먹고 출발한다고 한다. 여행은 원래 돈을 쓰면서 만족감을 얻는 과정 아닌가? 인천공항은 오랜만에 왔는데 코로나 여파인지 면세점이 많이 닫은 상태라 볼거리가 많이 없었다. 오히려 그간 무시했던 김포공항보다 넓지만 심심한 느낌이었다...

가다 2023.08.15

비가 그친 후의 응봉산

며칠간의 폭우는 공기 중의 이물질도 싹 쓸어버린 모양이다. 사무실에서 창밖을 바라보자 몽글몽글한 구름 아래로 남산 타워는 물론이고 그 뒤의 북한산까지 또렷하게 보였다. 퇴근할 때가 되자 구름이 살짝 걷히면서 햇빛이 건물들을 또렷이 비추고 있었다. 해가 질세라 탕비실에서 빠르게 식사를 때우고 집에서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Verbal Jint의 곡 『완벽한 날』의 가사 “우리 구의 최고 산책코스 응봉산으로 go”처럼 버스를 타고 응봉산으로 향했다. 산이라기보단 언덕에 가까워 빠른 걸음으로 10분도 걸리지 않아 꼭대기 전망대에 도착했다. 사무실에서 보는 풍경보단 평이했지만 이것도 나름의 멋이 있어 역시 그 가사대로 “한강을 내려다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다. 해가 지고 “별 길을 따라 다시 다리를 건너”는(이..

가다 2023.07.25

양재천 벚꽃 출사

2023. 4. 1. 인천에 살았을 때는 벚꽃이 피면 인천대공원이나 자유공원으로 친구들과 놀러 나가곤 했다. 코로나 19가 창궐했을 땐 벚꽃놀이도 시들해졌지만 작년부턴 좀 갈 만한 분위기가 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서울 시민이 되어버린 몸, 인천 서쪽 끝까지 가기는 너무 멀다. 작년에는 석촌호수를 갈지 고민하다 사람이 너무 많아 호수 주위를 도는 인간 회전초밥이 될 수 있다는 말에 포기했었고 올해도 똑같은 고민을 시작했다. 어제 회사에서 이런 얘기를 꺼내자 Y님은 혼자면 나가지 말라고 장난스럽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혼자서 벚꽃 구경도 못 할 이유는 또 무엇이랴. 이런 아무 이유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요받으면 괜히 싫다.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깔끔하다”, “게임을 줄이고 학원을 다녀야 공부를 잘한다”,..

가다 2023.04.09

코로나 이후 첫 일본 여행: 스시오마카세

2023. 3. 21. 푹 자고 11시에 딱 맞춰 체크아웃했다. 피규어 박스를 백팩에 넣으니 간신히 들어가 다행히 쇼핑백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패딩은 어쩔 수 없이 입고 다녀야 했지만 대신 안에는 반팔만 입었다. 하루종일 더웠으므로 정말 적절한 판단이었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둔 다이칸야마의 스시 타케우치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생각지 못하게 하치코 동상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주위가 붐벼 기념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안 들었다. 흐렸지만 벚꽃이 어느 정도 피어 있어 예뻤다. 스시야는 한참 더 걸어 한산한 골목가에 있었다. 첫 메뉴가 나오자마자 술부터 주문했다. 메뉴는 따로 없고 종류와 원하는 느낌을 말하면 구비해 놓은 것 중 꺼내 주신다. 깔끔하고 드라이한 니혼슈 도쿠리로 시작했다가 주위 사람들이 ..

가다 2023.04.06

코로나 이후 첫 일본 여행: 시부야

2023. 3. 20. 시부야 역은 엄청났다. 그동안 가 본 일본의 대도시라 봐야 오사카나 삿포로 정도였는데 이곳은 정도가 달랐다. 일본 인구의 80% 정도가 여기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차로에 사람이 많다. 멋지고 특이한 패션을 한 사람도 많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한국 사람이 옷을 무난하게 잘 입긴 하지만 재미가 없다. 개인적으론 좀 더 다양성을 용인하는 분위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텔을 all day place라는 곳으로 잡았는데 체크인이 완전 셀프라 신선했다. 방은 캐리어 두 개와 침대 두 개를 빼면 발 디딜 공간이 없는 수준으로 정말 작았다. 특히 벽걸이 TV보다 얇아 보이는 냉장고가 인상 깊었다. 그래도 적당한 가격대에 적당한 위치가 여기밖에 없었고, 오다가다 본 1, ..

가다 2023.04.05

코로나 이후 첫 일본 여행: 쿠사츠

2023. 3. 20. 자기 전에 선언한 대로 동생이 아침 온천을 즐기고 돌아와 깨우기 전까지 잤다. 일어나자마자 식당으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오카유/밥 중에 뭘 먹을 것인지 고르라길래 동생은 밥, 나는 오카유가 뭔지 몰라 선택해 봤는데 죽이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소화도 잘 안 되므로 죽도 나쁘지 않다. 일본식 한 상차림이 나왔고 모든 반찬을 조금씩만 먹었다. 일본식 반찬은 의외로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한국에 들어오는 것은 한국인 입맛에 맞는 것만 들어오는 것일 테지. 낫토에 동봉된 간장이 맛있었던 게 기억난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공용 욕탕으로 갔다. 하루가 지나면 남녀 탕이 바뀐다. 내부가 좀 다를까 기대했지만 거의 비슷했다. 그래도 사람 없이 아침의 온천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다. ..

가다 2023.04.05

코로나 이후 첫 일본 여행: 카루이자와 거리, 토키노니와 료칸

2023. 3. 19. 이른 체크아웃 후 호텔에서 자전거를 빌려 우선 역 앞의 버스 터미널로 갔다. 2번 터미널에서 쿠사츠까지 가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13시 40분에 급행이 있어 이걸 타기로 했다. 약간은 이국적이면서 한적한 마을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니 기분은 좋았지만 쌀쌀했다. 날씨도 자전거를 탈 것도 알았지만 장갑을 가져올 생각은 둘 다 하지 않았다. 나무가 울창한 좁은 도로를 따라 도착한 쿠모바이케는 겨울이라 그런지 풍경이 썩 아름답진 않았다. 작년 말에 구입한 선글라스를 여행 중 처음으로 써 봤는데, 눈부심은 줄었지만 선명한 색채를 느낄 수 없어 이내 보통 안경으로 돌아왔다. 사진을 찍힐 때는 좋을 것 같지만 찍는 입장에서는 영 아니었다. 카루이자와 거리의 관광지도 몇 개 찍어놓긴 했지..

가다 2023.04.03